테마 인문학
묵묵히 곁을 지켜줘서, 고마워! 기러기에게 배우는 응원과 지지
삶을 살다 보면 많은 역경을 마주한다. 이때마다 동료가 주는 지지감은 역경에 맞설 용기를 준다. 처절히 실패해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면 마음 놓고 도전할 수 있다. 기러기의 모습을 통해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삶의 기쁨을 느껴보자.
송태준 동물작가 (《곤충에게 배우는 생존의 지혜》 저자)
나는 동물덕후다. 덕후란 어떤 분야에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나의 동물에 대한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파워레인저를 볼 때 혼자 동물의 왕국을 보며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여행으로는 무려 동물원에 갔다. 내게 아주 재밌는 곳이라는 말만 듣고 따라온 친구들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나는 하마터면 사자의 점심밥으로 던져질 뻔했다. 이토록 끔찍한 동물 사랑에 친구들은 내게 묻는다. 동물이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누구나 그렇듯 나도 어릴 땐 동물의 멋있는 생김새에 이끌렸다. 하지만 점차 그들이 사는 방식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동물들의 삶을 보면 마치 인간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느낌이라 재밌다. 그래서 때론 인문고전이 아닌 동물 다큐멘터리 속에서 삶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한다.
기러기가 수천 ㎞를 완주할 수 있는 이유,
서로를 향한 지지와 응원 덕!
그래서 기러기들도 꼼수를 쓴다. 하늘에 커다란 ‘V자’ 모양을 그리며 날아가는 새들을 본 적 있는가? 이 V자 모양은 기러기들이 날기 위해 필요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아낄 수 있게 도와준다. 단순히 대형만 바꿨을 뿐인데, 그냥 날 때보다 무려 약 30%의 에너지가 절약된다. 단점은 맨 앞에 나는 새가 모든 공기저항을 그대로 받아야 한다는 것. 이 한 마리 덕분에 뒤따라오는 새들이 매우 편해진다. 그럼, 선두에 서는 새는 무리를 위해 희생하는 걸까? 아니다, 선두가 힘들어 보이면 금방 다른 새가 와서 자리를 바꿔준다. 새들은 자기가 지치면 누군가가 도와줄 것을 알기에 너나 할 것 없이 흔쾌히 앞에 선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되면 맘 놓고 모든 힘을 쏟아낸다. 무언가 벅찬 감정이 들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지지감이다. 내가 지치고 약한 모습을 보여도함께해 줄 동료들이 있다는 안정감, 이 안정감 덕분에 맘 놓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지지감, 누군가에게 응원과 격려를 받으면 느끼는 감정이다. 이 단어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동물이 있다. 바로 기러기다. 기러기는 철새로 유명하다. 철새란 철이 바뀔 때마다 사는 곳을 옮기는 새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기러기들은 주로 북쪽 시베리아 지방에서 내려온 친구들이다. 북쪽 지방에 살다가 날이 추워져서 조금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내려온 것이다. 너무 추우면 먹잇감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은 날이 너무 추워지기 전에 내려와 보금자리를 틀고, 너무 따뜻해지기 전에 다시 올라간다. 이게 말로 하니까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데, 무려 수천 ㎞의 거리를 이동하는 대장정이다. 차로 가기도 힘든 거리를 오직 두 날개를 이용해서만 가야 한다. 얼마나 힘들면 비행하면서 몸무게가 절반이나 줄어든다.
동료의 마음을 온전히 수용하는 위로와 응원!
당신은 힘들 때 어떤 말을 들으면 힘이 나는가? 힘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힘내라는 말만큼 힘이 안 나는 말도 없을 것이다. 힘내라는 말만 들으면 다행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술 더 떠서 아예 훈수를 두려고 한다. 지쳐서 아무런 의욕이 없는 사람한테 ‘이렇게만 하면 힘든 사정이 괜찮아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생각해서 해주는 말인 거 다 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다만 그것을 실천할 자신감이 부족할 뿐이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들의 힘듦을 그대로 인정해주면 된다. 자신감을 가로막는 ‘부정적인 감정’은 매우 특이한 성질을 가진다. 감정을 부정하고 제압하려 할수록 힘이 세진다. ‘고작 이런 것 때문에 힘들어하면 안 돼’라고 부정할수록 힘이 세진다.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순간부터 자존감은 쭉쭉 떨어진다.
이상한 사람이 하는 생각과 행동이 믿을만한가? 당연히 아니다. 모든 생각과 행동이 못마땅해서 아주 사소한 것까지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렇게 자존감은 바닥을 모르고 계속 추락한다. 감정을 부정하는 게 안 좋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 된다. 감정을 느끼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설사 그것이 매우 추악하고 부끄러운 감정일지라도 말이다. 감정은 무조건 옳다.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에 옳고 그름이 있을 뿐이다. 안 좋은 행동을 막기 위해선 안 좋은 감정을 경계해야 하지 않느냐고? 오히려 반대다. 부정적 감정은 당연히 여길 때 오히려 잠잠해진다.
그러니 힘들어하는 동료가 있다면 어떻게 바꿔보려고 하지 마라. 바꾸려는 시도 자체가 감정을 부정당하는 느낌을 준다. 그저 들어만 준다는 생각으로 힘든 점을 물어봐라. 동료가 부정적 감정을 토해내면 있는 그대로 공감하고 수용해줘라. ‘나는 너의 상황을 잘 모르지만, 충분히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와 같은 느낌으로. 만약 동료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해결한 경험이 있더라도 그 비법을 얘기하지 마라. 아무리 좋은 방법도 의욕이 없는 상태에서 들으면 열등감이 들 수 있다. 그냥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정도만 얘기하자. 앞서 말했듯이 핵심은 최대한 많이 듣는 것이다. 부끄럽고 불편한 감정을 최대한 털어낼 수 있게 도와줘라. 그리고 온전히 수용해 줘라. 동료는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여도 함께해 줄 동료가 있다는 사실에 큰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안정감을 바탕으로 다시금 힘을 낼 것이다. 도움을 받는 처지라도 미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당신도 그에게 힘이 되어주면 된다. 기러기가 자리를 바꿔주듯 힘들어하는 이가 있다면 흔쾌히 가서 도와줘라. 동료가 편해야 내가 편하고, 내가 편해야 동료도 편하다.
묵묵이 곁을 지켜주는 동료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지지감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았다. 진정한 지지감은 무조건 힘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료의 깊은 불안을 받아주고, 기운을 차릴 때까지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것이다. 마치 지친 동료를 위해 묵묵히 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처럼 말이다.
아무리 체력이 좋은 기러기일지라도 혼자서는 대장정을 소화하지 못한다. 부디 오래도록 행복한 삶을 위해 ‘같이’의 ‘가치’를 중히 여기는 당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체력이 좋은 기러기일지라도
혼자서는 대장정을 소화하지 못한다.
부디 오래도록 행복한 삶을 위해
‘같이’의 ‘가치’를 중히 여기는
당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