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우리’를 더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
나는 산골 농부다. 2005년, 메마르고 복잡한 도시 생활을 접고 합천 황매산 자락 산골 마을에 빈집과 논밭을 빌려 뿌리를 내렸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눅 들지 않고 ‘나답게’ 살 수 있는 곳인지를 잘 알아보고 선택을 했다. 그리고 서로 나누고 섬기며 살 수 있는 ‘오래된 미래’를 꿈꾸며 공동체와 학교를 만들었다. 농촌이 농사만 짓는 ‘농장’이 아니라, 문화가 살아 있는 ‘사람 사는 마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둘레에 사는 뜻있는 농부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하여 저녁밥을 먹으며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하기로 했다. 이름을 ‘열매지기공동체’라 지었다. 달마다 모여 한 달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배우고 가르치며 한 가지씩 제안을 하고, 토론을 한 다음 실천하기로 했다. 어머니처럼 모든 생명을 품어 살리는 흙과 지하수와 작은 개울과 강과 바다를 살리기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와 비닐을 쓰지 않고 농사(유기농업)를 짓자. ‘돈벌이 농사’가 아니라 ‘살림살이 농사’를 짓자. 농약과 화학비료와 농기계를 쓸 수밖에 없는 ‘대농’보다 지구를 살리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소농’으로 살자.
수세식변소를 쓰지 않고 생태뒷간을 지어 식구들이 눈 똥오줌을 거름으로 만들어 쓰자.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줄이기 위해 작은 흙집을 짓고 방에는 구들을 깔아 아궁이에 군불을 때자. 자연재해로 전기와 기름과 가스가 사라진다 해도 살아갈 수 있게.
두 번째, 농부들의 손으로 학교를 세웠다. 콘크리트로 지은 딱딱한 학교가 아니라 산과 들이 모두 스승인 학교, 한글도 모르고 한평생 명함 한 장 만들지 못했지만 정직하게 땀 흘리며 농사지으며 살아온 어르신이 스승인 학교, 어르신(노인) 한 사람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소멸하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두 번째 토요일, 농촌 어린이들과 함께 노동과 공부와 놀이가 하나인 ‘강아지똥학교’를 세웠다.
세 번째, 농촌 청소년들이 어디로 가든 나쁜 어른들한테 속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학교를 세웠다.
한 달에 한 번, 세 번째 토요일, 달마다 다른 주제로 강사를 초청하여 듣고 배우고 토론하고 깨달을 수 있는 ‘담쟁이인문학교’를 세웠다.
네 번째, 농촌 청년들이 도시로 가지 않고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청년 농부 지원금> 통장을 만들었다. 그 지원금은 선배 농부들 스스로 기부를 하고, 모자라면 기부금을 받도록 했다. 기부금으로 청년 농부들에게 해마다 100만 원씩 지원하고, 청년 농부 세 사람 이상 여행을 가거나 교육과 행사를 할 때도 조건 없이 지원한다. 함께 해야만 공동체 정신을 깨닫게 될 것이고,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농부들이 손수 농사지은 농산물을 가공하여 직거래할 수 있도록 ‘열매지기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고 터를 마련하여 작업장을 지었다. 그리고 공동생산, 공동판매, 공동분배를 원칙으로 ‘나’보다 ‘우리’를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자고 다짐했다.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고, 청년 농부들의 미래를 살리고, 큰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살릴 수 있게. 사람이 자연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고 ‘디딤돌’이 될 수 있게. ‘적’이 되지 않고 ‘벗’이 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