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인문학
서로 나누며 한데 어우러져
개미에게서 배우는 일체감
조직에서의 일체감은 더 나은 의사를 결정할 수 있게 도우며, 오해와 갈등을 예방하고, 문제 해결책을 찾게 한다. 무엇보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주어 일의 능률과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개미의 삶을 통해 한데 어우러져 사는 기쁨의 지혜를 발견해 보자.
서정홍 농부 시인
개미는 땅속이나 썩은 나무에 집을 짓고 떼 지어 사는 곤충이다. 개미는 여왕개미와 일개미 그리고 수개미로 나눈다. 이들은 모두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에 따라 일한다. 몸이 가장 큰 여왕개미는 암개미로서 알을 낳는 일만 한다. 날개가 달린 수개미는 결혼 비행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다. 일개미는 집짓기, 먹이 모으기, 여왕개미 돌보기, 알과 애벌레 보살피기와 같은 일을 한다. 일개미 중에는 바깥에서 집을 지키고 적과 싸우는 병정개미도 있다.
작고 하찮게 보이는 개미도 안다. 아무리 힘이 세고 똑똑해도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서로 나누며 한데 어우러져 한 덩어리가 되어야만 ‘오래된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을.
사람도 개미처럼 집을 짓고 서로 나누며 한데 어우러져 산다. 이렇듯이 개미와 사람은 닮은 데가 많다. 잠언에는 개미가 등장하는 비유가 나온다.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가서 그 사는 모습을 보고 지혜를 깨쳐라.
개미는 우두머리도 없고 지휘관이나 감독관이 없어도
여름 동안 양식을 장만하고 추수철에 먹이를 모아들인다.”
(잠언 6장 6절~8절)
그러나 아무리 개미가 부지런한들 사람보다 부지런하겠는가. 지구촌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하고, 심지어 겨울철에도 일하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지 않은가?
“바깥 활동을 하는 일개미가 전체의 20~30퍼센트다.
나머지 70~80퍼센트는 집안일을 하며, 바깥 활동을 하는
일개미들의 수가 줄어들 때를 대비하여 대기 중이다.”
‘나’보다 ‘우리’를 더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
나는 산골 농부다. 2005년, 메마르고 복잡한 도시 생활을 접고 합천 황매산 자락 산골 마을에 빈집과 논밭을 빌려 뿌리를 내렸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눅 들지 않고 ‘나답게’ 살 수 있는 곳인지를 잘 알아보고 선택을 했다. 그리고 서로 나누고 섬기며 살 수 있는 ‘오래된 미래’를 꿈꾸며 공동체와 학교를 만들었다. 농촌이 농사만 짓는 ‘농장’이 아니라, 문화가 살아 있는 ‘사람 사는 마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둘레에 사는 뜻있는 농부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하여 저녁밥을 먹으며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하기로 했다. 이름을 ‘열매지기공동체’라 지었다. 달마다 모여 한 달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배우고 가르치며 한 가지씩 제안을 하고, 토론을 한 다음 실천하기로 했다. 어머니처럼 모든 생명을 품어 살리는 흙과 지하수와 작은 개울과 강과 바다를 살리기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와 비닐을 쓰지 않고 농사(유기농업)를 짓자. ‘돈벌이 농사’가 아니라 ‘살림살이 농사’를 짓자. 농약과 화학비료와 농기계를 쓸 수밖에 없는 ‘대농’보다 지구를 살리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소농’으로 살자.
수세식변소를 쓰지 않고 생태뒷간을 지어 식구들이 눈 똥오줌을 거름으로 만들어 쓰자.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줄이기 위해 작은 흙집을 짓고 방에는 구들을 깔아 아궁이에 군불을 때자. 자연재해로 전기와 기름과 가스가 사라진다 해도 살아갈 수 있게.

두 번째, 농부들의 손으로 학교를 세웠다. 콘크리트로 지은 딱딱한 학교가 아니라 산과 들이 모두 스승인 학교, 한글도 모르고 한평생 명함 한 장 만들지 못했지만 정직하게 땀 흘리며 농사지으며 살아온 어르신이 스승인 학교, 어르신(노인) 한 사람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소멸하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두 번째 토요일, 농촌 어린이들과 함께 노동과 공부와 놀이가 하나인 ‘강아지똥학교’를 세웠다.

세 번째, 농촌 청소년들이 어디로 가든 나쁜 어른들한테 속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학교를 세웠다.
한 달에 한 번, 세 번째 토요일, 달마다 다른 주제로 강사를 초청하여 듣고 배우고 토론하고 깨달을 수 있는 ‘담쟁이인문학교’를 세웠다.

네 번째, 농촌 청년들이 도시로 가지 않고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청년 농부 지원금> 통장을 만들었다. 그 지원금은 선배 농부들 스스로 기부를 하고, 모자라면 기부금을 받도록 했다. 기부금으로 청년 농부들에게 해마다 100만 원씩 지원하고, 청년 농부 세 사람 이상 여행을 가거나 교육과 행사를 할 때도 조건 없이 지원한다. 함께 해야만 공동체 정신을 깨닫게 될 것이고,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농부들이 손수 농사지은 농산물을 가공하여 직거래할 수 있도록 ‘열매지기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고 터를 마련하여 작업장을 지었다. 그리고 공동생산, 공동판매, 공동분배를 원칙으로 ‘나’보다 ‘우리’를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자고 다짐했다.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고, 청년 농부들의 미래를 살리고, 큰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살릴 수 있게. 사람이 자연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고 ‘디딤돌’이 될 수 있게. ‘적’이 되지 않고 ‘벗’이 될 수 있게.
“잎꾼개미(가위개미) 같은 종류는 농사를 짓는다.
식량 수송대인 큰 일개미가 가져온 잎을 식량 창고에
쌓아두면 대기하고 있던 작은 일개미들은
그 잎을 입으로 씹어 빻아서 죽처럼 만든다.”
현실이 되는 함께 꾸는 꿈, 어떤가요?
농부가 되고 18년, “우두머리도 없고 지휘관이나 감독관이 없어도 여름 동안 양식을 장만하고 추수철에 먹이를 모아들이는 세상”을 꿈꾸며 개미처럼 살았다. 여태 누가 시켜서 한 일이라면, 아니면 돈 몇 푼 받으려고 한 일이라면, 일을 해도 얼마나 힘들고 지겨웠을까? 나는 오늘도 뜻있는 동료들(농부들)이 곁에 있어 삶이 날마다 설레고 흐뭇하다. 아무리 좋은 꿈도 혼자 꾸었으면 꿈으로 그쳤겠지만, 함께 꾸는 바람에 그 꿈이 현실이 되었다. 어찌 살맛이 나지 않으랴.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개미를 생각한다. 아무리 힘이 세고 똑똑해도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서로 나누고 한데 어우러져 한 덩어리가 되어야만 ‘오래된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