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처방전
모두가 첫날처럼 서투르지만,
새 시작을 위한 마음책
“정년을 앞두고 있어 새 삶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도 큽니다. 은퇴 후에 새롭게 도전하는 제2의 인생을 응원해 줄 수 있는 책을 소개해 주세요.” 은퇴는 새로운 시작이다. 그리고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기회이다. 은퇴 이후에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을 소개한다.
북 큐레이터 김이듬 시인
MIND PRESCRIPTION

마음 처방, 하나
시인 김용택의 시집
《모두가 첫날처럼》
한가하게 시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신없이 바삐 돌아가는 현실에서 시를 읽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 가치 찾기다. 세상과 사람 속에서 진실을 찾는 것. 참담한 사막 같은 나날 중에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이다. 김용택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 《모두가 첫날처럼》(문학동네, 2023)에서 시 한 편을 옮겨본다.
나무야
봄은 오고 있다
너를 올려다본다
내 나이 일흔여섯이다
이제 생각하니
나는 작고 못났다
그런데다가
성질도 못됐다
나무야
근데 내가 인자
어찌하면 좋을까
_「나무에게」 전문
고희를 훌쩍 넘긴 일흔여섯 살의 시인은 이제야 직시한다. “나는 작고 못났다/그런데다가 성질도 못됐다”는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하여 “나무”에게 탄식하며 묻는다. “근데 내가 인자/어찌하면 좋을까”라고.
첫 시집 《섬진강》 이후 독자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아왔고 한국 서정시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시인이지만 문득 “못난” 자신을 발견하며 나무를 “올려다” 보게 된 것이다. 시인의 삶에 대한, 일상에 대한 통찰을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는 시집이다. 깊어진다는 것은 진실하고 소박하고 소탈해진다는 것과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55편의 시편들이 실려 있다. 더불어 조심스레 조언을 드리고 싶다. 은퇴를 준비하거나 은퇴 후에 새로운 제2의 삶에 도전하는 분들이라면, 시 창작에 재미를 붙여보시기를. 우선 펜과 노트를 준비하시기를. 시는 막막하고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손전등 역할을 할 때도 많으니까.
MIND PRESCRIPTION

마음 처방, 둘
작가 이보영의 에세이
《은퇴하고 즐거운 일을 시작했다》
사실 50대에서 70대 사이는 노년이 아니다. 이 시기에 은퇴하더라도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하면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져 무기력에 빠지거나 앞날에 대한 근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쉽다. 완벽한 노후 대비를 한 사람은 여유를 즐길 수 있겠지만, 대부분 퇴직자는 두 번째 일을 찾아 그 직업으로 두 번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누구도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은퇴라면 인생 2막을 지혜롭게 꾸리는 방법은 없을까?
이보영이라는 프리랜서 작가는 은퇴하고 두 번째 직업을 찾아 10년 이상 그 일을 지속하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베이비부머 세대’란 한국 사회 격동기인 1955~196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로, 국내 약 780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인구집단이다. 지금은 이 세대의 사람들이 은퇴하고 있는 시기이다. 저자는 이들이 은퇴 후 각자의 ‘취준’을 거쳐 새로운 일과 마음으로 삶을 바꾼 경험을 인터뷰한 내용을 도서 《은퇴하고 즐거운 일을 시작했다 - 퇴직 이후 새로운 직업을 선택한 아홉 명의 이야기》(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2022)에 담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인터뷰이들은 각각 다양한 직종에 종사했지만 은퇴 이후 자신이 할 수 있는, 혹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즐거움과 보람을 충족시키며 두 번째 인생을 의미 있게 펼쳐가고 있다. 대기업 임원의 자리에서 퇴직한 문두식 씨는 대학 시절 전공을 살려 청소년 상담사로 일하고 있으며, 사진 찍는 일을 좋아하는 나종민 씨는 장애인 전용 사진관이라는 자기만의 블루오션을 찾아냈다. 독서가 취미였던 이철재 씨는 동네 서점을 운영하며 꿈꾸던 하루하루 이뤄가고 있으며, 사무실 책상과 경쟁적인 도시를 벗어나 귀농·귀촌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김재광 씨와 송헌수 씨는 자연 속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눈에 띄는 조언도 있다. 새로운 일 찾을 땐 “눈을 낮추라”는 것. 이 말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현재 자신의 상황과 가진 자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탐색하라는 것이다. 실패하는 은퇴자들의 공통점은 은퇴 전에 지녔던 기준을 고수한다는 것인데, 아홉 명의 인터뷰이들처럼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위해서는 눈을 낮추고 현실을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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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처방, 셋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한편 한 존재가 터닝포인트에 섰을 때 거창한 계획과 뚜렷한 방향 탐색으로 억눌려야만 할까? 자신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의무감과 책임감을 덧씌우고 있지는 않은가?
삶이란 먼지처럼 가벼운 것이라고 밀란 쿤데라는 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는 아포리즘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 2018)에 적혀 있는 문장이다. 이 장편소설은 작은 술집에서 일하며 근근이 살던 젊은 테레자와 외과 의사 토마시를 중심으로 네 남녀의 삶과 사랑의 모습,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운명과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논한다. 이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고, 국내에서도 누적 판매량이 100만 부를 넘었다. 하지만 정작 책을 읽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이 책을 55세에 발표했고 94세를 맞은 올해 7월에 사망했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제2의 도시 브르노에서 태어났고 1975년 공산에 저항하다 모국에서 추방되어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
짧지 않은 생애 동안 파란만장하게 떠돌이처럼 살아온 작가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무엇일까? 밀란 쿤데라는 성(性)과 사랑, 사랑의 속박과 자유, 육체와 정신의 갈등과 같은 실존적 고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독자에게 시공간을 뛰어넘어 인간의 보편적 문제를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이 현대 인간의 자화상을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북 큐레이터가 은퇴를 준비하는 KTR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퇴임이나 실직이 주는 가장 비참한 점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성가신 존재가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지레 주눅 들지 않은 예비 퇴직자를 만난 적 있다. 그는 까다롭지 않았고 퉁명스럽지도 않았다. 몸이 허약해지거나 가난해질까 봐 근심하는 시간에 책을 읽었다. 새로운 길을 자주 걸었다.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며 소소한 미덕을 실천했다. 사람들은 모두 선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애초에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퇴직은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현실이다. 바로 지금 ‘오늘’은 서투르고 신선한 ‘첫날’이다.”
EDITOR TIP 행복한 노년을 위한 영화
1.
오베라는 남자
유쾌
감독
하네스 홀름

출연
롤프 라스가드, 바하르 파르스
은퇴한 심술궂은 남자가 옆집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오면서 예상치 못한 우정과 새로운 목적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2.
해피엔딩 프로젝트
사랑
감독
마이클 맥고완

출연
제임스 크롬웰, 쥬느비에브 뷰졸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병든 아내를 위해 더 좋은 집을 지으려는 한 노인의 결심을 보여준다. 사랑, 인내, 노년의 열망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3.
그린 북
우정
감독
피터 패럴리

출연
비고 모텐스, 마허샬라 알리
두 음악가가 함께 미국을 여행하며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친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노후에도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