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적 참견시점
용기 있는 사람들의
‘쓸데없는’ 아이디어가 모여
탄생한 양자컴퓨터
양자컴퓨터는 무엇이며, 어떻게 등장하였을까? 양자컴퓨터 발전을 위한 도전과 미래에 대해 알아보자.
이순칠 한국연구재단 양자기술단 단장(《퀀텀의 세계》 저자)
양자컴퓨터란 무엇인가
과학과는 무관한 청중이 모인 곳, 예컨대 어린이 도서관이라든지 경영자 조찬 모임 같은 곳에서 양자컴퓨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 세상을 지배하는 자연법칙과는 다른 법칙에 따라 돌아가는 세상의 컴퓨터인데, 병렬처리를 잘하기 때문에 수퍼컴퓨터보다 빠르다”라고 답하곤 한다. 병렬처리란 흔히 말하는 멀티태스킹을 의미한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학생 100명의 성적을 평균 내려 한다면 우선 100개의 숫자를 다 더해야 하는데, 나 혼자 더하는 것보다는 조교 4명을 불러서 5명이 같이 20개씩 나누어서 더하고 나중에 5개의 숫자만 한 번 더 더하면 거의 5배 빠르게 할 수 있다. 위의 양자컴퓨터 설명에 어려운 말은 없지만, 그 대신 이렇게 두루뭉술한 정의를 듣고서는 양자컴퓨터가 어떤 것인지 감을 잡기 어려울 것이다. 대학교에서 물리화학을 수강하느라 고생 좀 해본 사람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우리와는 다른 세상’이 원자들이 존재하는 미시세계를 뜻하며, ‘우리 세상의 법칙과는 다른 법칙’이 양자물리를 의미함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병렬처리를 잘하면 효율적인 알고리듬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데이터 검색이다. 우리가 새로운 웹사이트에 가입하려 하면 대문자, 소문자, 특수 기호, 숫자 모두 섞어서 8자 이상으로 패스워드를 만들라는 주문이 짜증 나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만들 수 있는 패스워드의 경우 수는 약 7경 개 정도 된다. 이 패스워드를 모를 때 무식하게 해킹을 시도해 본다고 하자. 일 초에 백만 개의 숫자를 무작위로 집어넣어 본다면 해킹이 될 때까지 약 2300년 정도 걸린다. 그런데 같은 일을 양자컴퓨터를 써서 병렬처리 하면 약 4분에 해결된다. 내 은행 계좌를 누군가가 해킹하려고 할 때 2000년이 넘게 걸린다고 하면 걱정이 되지 않지만 4분에 된다고 하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진다.
원자들이 사는 미시세계의 운행규칙은 우리 세상과 다르기 때문에 그 세상의 모습도 다르며 그 세상을 경험해 보지 않은 우리는 그 세상 이야기를 들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예컨대 양자컴퓨터가 병렬처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양자 세계의 중첩현상은 우리 세상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므로 경험해 보지 않은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가 양자 세계의 이야기를 들을 때 느끼는 인지부조화를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유명한 표현이 ’고양이가 죽은 상태와 살아있는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라는 것인데, 이 말이 이해가 된다면 어찌 제정신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과 개념에 기반을 두고 개발된 것이 양자컴퓨터이기 때문에 공상과학같이 들리는 것이다. 양자물리나 양자컴퓨터 이야기를 들을 때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공상과학을 즐기겠다는 심정으로 듣는 것이 좋다. 마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을 때 말하는 고양이, 말하는 토끼가 이해되지 않지만, 그냥 받아들이고 스토리를 즐기는 것처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면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양자역학뿐이겠는가?
양자컴퓨터의 등장
양자 세계는 우리가 이해할 수가 없지만, 양자물리의 예측은 틀린 적이 없다. 그래서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닐스 보어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계산이나 열심히 해라”고 했고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그 말을 충실히 따라서 현대문명을 퀀텀 점프하게 했다. 양자물리가 형성된 1900년부터 그 이후 30년은 물리학사 상 가장 격동기였으며, 양자물리가 없었으면 화학실험실에는 아무런 분석기기도 없이 지금도 유리로 만든 각종 도구만이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DNA, RNA를 다루는 생명공학이나 원자폭탄 같은 대량 살상무기도 양자물리 덕분에 태어난 것이다. 자연과학에 기반을 둔 공학은 물론 말할 것도 없다. 전자공학의 기반을 이루는 트랜지스터와 레이저는 양자물리가 없었으면 발명될 수 없었다.

양자물리가 완성된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이렇게 양자물리가 찬란하게 세상을 바꾸는 시기였으며 이 시기에 보어의 충고를 듣지 않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과학자들은 직장을 잡기도 어렵고 논문을 싣기도, 연구비를 따기도 어려웠다. 양자물리의 철학적 논쟁을 실험실에서 실증해 볼 수 있는 수식의 형태로 처음 정리한 벨에게 아스뻬라는 청년이 찾아와서 “당신의 식을 내가 실험으로 증명해보겠소”라고 했더니 벨이 “당신 정규직이요?”하고 물었다고 한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논문이지만 벨의 부등식이 실린 논문은 여기저기서 퇴짜를 받다가 단 4차례만 발간되고 폐간되어 버린 학술지에 간신히 실렸다. 벨의 부등식은 실험으로 증명하기도 만만치 않았지만, 증명이 되어도 이런 학술지에 간신히 실려서는 정규직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을 해준 것이었다. 아스뻬는 그래도 말을 듣지 않고 꿋꿋이 실험을 강행했고 증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아스뻬 박사는 작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용기 있는 사람들의 ‘쓸데없는’ 아이디어들이 모여서 1990년대 말에 양자컴퓨터가 탄생했다.
양자컴퓨터의 미래
양자컴퓨터는 패스워드를 찾는 등 암호 깨기를 잘한다.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탄생하면 영화 《007》에 나오는 악당 스펙타클처럼 적국의 미사일을 내 맘대로 발사하거나 발사 중지시킬 수도 있고 궤도도 변화시킬 수 있다. 또한 스위스은행 계좌도 전부 해킹해서 부자가 될 수도 있으며 한 나라의 증권시장을 초토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핸드폰에 암호를 넣어 깨우고 하루 종일 온라인뱅킹, 온라인쇼핑, SNS 등에 암호를 기입하며 마지막으로 집에 들어올 때도 현관문 자물쇠의 암호를 눌러야 한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은 완전히 암호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우리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 예상된다. 물론 양자컴퓨터가 현대암호를 다 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미리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암호체계를 바꾸는 것은 10~20년이 걸리는 일이라고 하므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미국 표준연구소에서는 이미 2016년에 양자컴퓨터에 내성이 있는 신종 암호의 표준을 만들기 위해 공모에 들어갔고, 2023년에 4개의 후보를 발표했다. 주인이 없는 비트코인 같은 블록체인시스템은 사용하고 있는 암호체계를 바꾸기가 쉽지 않으므로 수정에 고통이 수반될 가능성이 높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초연결성과 초지능성이라고 하는데, 양자컴퓨터는 초지능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줄 것이다. 그러면 4차 산업혁명에서 기대되는 화이트칼라 노동의 대체, 사물인터넷 등에 퀀텀점프가 일어나고, 지금은 청소 내지 음식 나르기나 하는 로봇들이 훨씬 똑똑해져서 우리와 같이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시대가 예상보다 빨리 올 것이다.

전자기유도법치을 발견한 패러데이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그거 알아서 뭐에 쓰는 거요?” 전자기 유도법칙이란 코일에 자석을 가까이 가져가면 전류가 흐르는 현상인데 재밌기는 하지만 그딴 거 알아서 뭐 하냐는 질문이었다. 그랬더니 패러데이가 “갓 태어난 아이가 커서 어디에 쓸모가 있을지 어떻게 알겠소?”라고 답했다고 한다. 요즘 우리 주위에 보는 전자기기 중에서 코일이 사용되지 않는 전자기기는 상상하기 어렵다.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이 있었던 젊은 세대들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 어땠을지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는 것은 거꾸로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인터넷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상상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양자컴퓨터가 없는 지금은 양자컴퓨터가 생겼을 때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하기 어렵다.

이 같은 이야기들은 모두 강력한, 즉 오류도 거의 없고 비트 수도 많은 양자컴퓨터가 나왔을 때의 이야기다. 현재 개발된 양자컴퓨터는 오류도 많고 비트 수도 100비트 정도밖에 되지 않아 암호를 깰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컴퓨터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한가지는 최적화문제로서 공장공정이나 물류배달 등을 최적화하여 에너지를 절감하고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에 양자컴퓨터를 적용하는 연구도 많이 하고 있는데, 양자인공지능이 나오면 요즘 챗GPT에 놀라듯 놀랄 일이 다시 한번 생기리라 예상된다.

양자컴퓨터의 응용으로 현재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분야는 분자 시뮬레이션이다. 고전계의 자유도는 입자 수 N에 비례하여 증가하지만 양자계의 자유도는 N승에 비례하여 증가하기 때문에 원자로 이루어진 분자의 성질을 고전컴퓨터로 모사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양자컴퓨터는 입자 수 N승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병렬처리 능력이 자유도의 증가를 상쇄하기 때문에 계산해야 할 입자 수가 늘어나도 계산시간이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분자 시뮬레이션에 뛰어나다고 생각되며 신약이나 신물질 개발에 적용되어 연구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계산화학의 영역이다. 화학자들은 양자물리에 익숙해 양자컴퓨터를 금방 이해할 수 있으며 자신들의 연구영역에 양자컴퓨터가 유용하므로 양자컴퓨터야말로 화학자들을 위한 발명품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