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통해
글. 홍보실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하는 ‘인생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절대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때로는 힘을 얻기도, 고통을 받기도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타인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한다면 현명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관계심리학 전문가 이헌주 교수와 김가형 선임연구원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신뢰라는 것은 결국
진실성이라고 하는 토대와
시간이라고 하는 너비 속에서
획득되는 것입니다.”
관계심리학이란 무엇인가
‘관계심리학’이라는 단어가 이해는 되는 것 같지만 처음 접하는 용어이다 보니 아리송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전기전자센터 김가형 선임연구원은 관계심리학이란 무엇인지 이헌주 교수에게 질문을 건넸다. 이에 이헌주 교수는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잘 들어달라며 분위기를 풀기 위해 웃으며 설명을 해주었다.
심리학에서는 사회심리학, 인지심리학, 소비자심리학 등 여러 영역이 있다고 한다. 그중 상담심리학은 일대일로 만나 깊이 있는 관계 속에서 인간관계, 역학 관계, 역동 관계 등을 토대로 형성되는 것을 보는 것인데 이를 토대로 일대일이 아닌 여러 사람을 같이 만나 집단 상담, 체계적 상담을 하는 것을 일컬어 ‘관계심리학’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설명했다. “인간이 보통 경험하는 3대 감정이 불안, 분노, 우울이에요. 내가 잘 지내고 있다면 상담을 오지 않겠지만 길을 잃고, 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을 찾아오시는데 여러 번 만나다 보면 감정에 관해 이야기해요. 이런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려면 관계를 잘 형성해야 해요.”
이헌주 교수는 초기에는 심리치료 기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치료 이전과 이후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 것에 흥미를 느끼고 공부를 했지만, 공부를 할수록 더 묵직한 기법은 상담이라고 느꼈고 상담은 관계가 형성이 돼야 가능하다고 느껴 관계심리학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고 했다.
첫인상만 좋은 사람보다는 한결같은 사람이 되기
이헌주 교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김가형 선임 연구원은 관계를 잘 형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조건이 있겠지만, 신뢰도 중요할 것 같은데 신뢰를 잘 쌓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이헌주 교수는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으로 시간을 꼽았다. 대부분 첫인상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꼽으며 첫인상을 잘 구축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를 하지만 이는 과장된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인간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닌 연속적으로 재구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한 것처럼 인간관계도 강물처럼 매시간 변하고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씨를 뿌리자마자 열매가 열리지 않듯 인간관계는 시간의 너비에서 형성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라는 것은 시간의 너비 속에서 형성이 되는 것이며 그 시간 안에서 진실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상대방을 믿을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과거의 모습과 바뀐 것은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신뢰라는 것은 결국 진실성이라고 하는 토대와 시간이라고 하는 너비 속에서 획득되는 것입니다.”

신뢰를 쌓기 위한 첫걸음
현대인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사실 회사이고, 그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료들일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고민이 많기도 하지만,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회사 안에서의 관계 속에서 고민하는 분들도 많다. 김가형 선임연구원도 이제 입사 3년 차가 되며 선배 연구원들, 더 나아가 앞으로 들어올 후배 연구원들과의 관계에 많은 고민이 있다고 했다. “신입사원으로서 어리숙한 모습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어리숙하게만 보이지 않고 싶고, 신뢰를 받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동료들과의 관계를 잘 구축하면서도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스킬이 혹시 있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비위를 맞추고 상대방의 의견에 무조건적인 동의를 하면 도움이 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방법이라고 이헌주 교수는 이야기했다. 이 말은 자기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라는 말도 아니지만, ‘저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가장 피해야 한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거절하는 방법도 잘 모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의 선택을 이야기하는 방법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신뢰의 첫걸음은 내가 작은 것 하나도 직접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져보는 것이에요.”
또, 이헌주 교수는 거절하는 것에 큰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제안을 거절할 때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거절의 이유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내가 다음에는 꼭 상대방과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면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조언도 덧붙였다.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고마워, 미안해 말하기
신뢰를 쌓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너무도 찰나의 순간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신뢰가 깨졌다고 해서 소중한 관계를 한순간에 저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김가형 연구원은 깨진 관계를 다시 되돌릴 방법에 대해서도 물었다.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많이 알려진 방법에는 애정을 표현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헌주 교수는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중요한 말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것은 바로 ‘미안해’와 ‘고마워’라는 말이다. 이는 깨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과도 연결되는데, 신뢰 회복의 지름길은 잘못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고 고마움에 대해 자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워하고 심지어 회피하려고도 한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을 때 그것을 회피하고 애정의 표현으로 덮으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을 직면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했을 때 상처는 더 빨리 아물고 관계 회복에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헌주 교수의 말을 듣던 김가형 연구원은 앞서 말했던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 더불어 직장에서도 이런 표현을 잘하기 위해서는 많은 교감이 필요하다고 한다. 학창시절의 친구만큼 막역하게 친해질 필요는 없지만, 서로 사적인 이야기로 인해 공감하다 보면 교감을 나눌 수 있다.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해 깊이 있는 관계가 구축되면 직장 내에서도 시너지를 더 발휘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과거의 감정에서 벗어나고 미래를 위해 도전하기
현대인들이 관계에 대해 힘들어하는 것만큼 함께 힘들어하는 것이 우울감과 불안감이다. 오랜 시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인만큼 조금이라도 해소할 방법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어봤다. 이헌주 교수는 불안은 보통 미래에 대한 감정이고 그에 반해 우울은 과거에 대한 감정이라고 했다. 즉 불안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모호한 걱정이며, 우울은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한 후회와 상실감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일을 후회하다 보니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불안하고, 그러다 보니 또 후회의 감정이 들며 빠져나올 수 없는 고리에 들어가게 된다. 어쩌면 우울은 생생하지 않은 감정이다. 잿빛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 이를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생생함을 머금은 일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을 채우는 것이다. 내가 즐겁고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활동을 할수록, 일상에서 경험할수록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이헌주 교수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내가 왜 불안한지를 명확히 짚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불안하고 그것이 어느 정도의 크기이며, 그것이 내 삶에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명료하게 숙고하는 것이다. 이를 명확히 봄으로써 불안이 어디에서 나타나는지를 명확히 포착하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작은 행동과 실천들을 일상에서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불안한 마음에서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작은 행동, 즉 불안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도전감’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시간의 너비 속에서 나에게 정말 가치가 있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도전할 수 있는 것, 내 세상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뿌리가 굳건하고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어느 순간 스스로 되돌아보면 우울과 불안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어디선가 힘들어하고 있을 분들에게 용기를 전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끝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