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선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런 거 한다고, 세상이 바뀔까요?
싶은 순간이 있다면

글. 이소연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

“나 앞으로 옷 안 살래!” 5년 전 어느 날 이 말을 뱉었을 때만 해도, 이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나는 몰랐다. 화가 나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값싸고 화려한 옷을 마구 사며 스트레스를 풀었고, 시험이 끝나고 놀러 가는 날이면 친구들과 팔짱을 끼며 ‘쇼핑이나 하러 가자!’고 외치는 게 일상이었다. 쇼핑이 곧 노는 것이었고, 취미였고, 일상이었다. 그러던 나는 무더웠던 그날의 여름날을 계기로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책까지 쓰게 됐다.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했던, 바로 그날도 나는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미국의 한 대형 쇼핑몰 세일 코너에서 마음에 드는 패딩을 발견해 가격표를 살펴보니 1.5달러였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잠깐. 정말로 우리나라 돈으로 2,000원도 안 되는 가격이라고? 방글라데시에서 만들어져 미국으로 넘어와, 식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내게도 싸다고 여겨지는 이 옷, 어떻게 2,000원이라는 가격에 팔릴 수 있는 거지? 부드러운 솜털이 가득 찬 패딩이 갑자기 천근만근이라도 되는 듯 무겁게 느껴졌다. 혼란스러웠다. 옷이 뿜어내는 먼지 가득한 공기, 무덤처럼 쌓인 옷을 파헤치는 사람들, 내 손목에 축 처진 채 매달려 있는 ‘건진’ 옷들. 이 모든 게 낯설게 느껴졌다. 이런 가격이 어떻게 가능한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하두리캠, 싸이월드, 얼짱시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거쳐 온 나의 세상에서 쇼핑은 일상 그 자체였다. 인생샷을 찍기 위한 일회용 옷, ‘사복 패션 레전드’를 찍은 한 패셔니스타의 키링, 결혼식에 가려면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명품백까지. 도무지 하차하려야 하차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유행의 톱니바퀴 위에서, 쇼핑과 패션은 그림자처럼 내 인생의 모든 기쁘고 슬픈 순간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다. 무엇을 사고 있는지 또 사야 하는지 몰랐지만, 재킷 주머니에는 구겨진 카드 영수증이 잔뜩 쌓여갔다.

분명 멋있어지고 싶었다. 가장 유행하는 최신 트렌드의 옷을 입으면 멋있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영원히 손에 잡히지 않는 그 트렌드가 나를 좀먹고 있는 줄은 몰랐다. 매일 아침 옷장 앞에 서면 탄식에 가까운 한마디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오늘 뭐 입지.”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걱정은 짜증과 불안으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음에 감사함 따위 느낄 리 없었다. 옷장도 나도, 육중한 옷과 쇼핑을 지탱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물건이 있어 소비하는 게 아니라 ‘트렌드’나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를 유도해 물건을 존재하게 하는 기이한 산업 구조, 쇼핑. 아름답게만 보였던 옷들은 개발도상국에 살아가는 내 또래의 여성 노동자들의 삶에, 목화를 키우는 농부의 삶에, 우리가 살아가는 바다와 산, 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옷에 숨겨진 진실을 들여다보게 된 그날 이후, 나는 ‘작고 소중한 취미’라고 생각했던 쇼핑을 멈췄다. 무한으로 업데이트되는 쇼핑몰의 새 옷을 내려보는 일도 멈췄다. 대신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들로 나의 삶을 채워가기로, 새 옷이 아닌 나만의 멋을 만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엄마가 빨간색 립스틱에 가죽 재킷을 입던 때가 있었어?” 엄마의 옷장을 뒤적이다 보면 옛 사진까지 들춰보게 되고, 그날 밤은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덕분에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마다 옷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일도 줄었다. 엄마가 내 나이 때 입었던 20년, 30년 된 옷들이 나와 함께 하게 된 덕분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한 나를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하루라도 젊었을 때 예쁜 옷을 입어야 하는데, 왜 남의 옷만 입냐고. 패션이니 스타일이니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네가 어쩌다 이렇게 변했냐고. 친구들도 묻는다. 너 한 명이 옷을 안 산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맞다. 제로웨이스트, 비건, 용기내챌린지, 노 쇼핑 챌린지... 이 모든 작은 실천의 공통점이 두 가지 있다면 하나는 일상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혼자 만드는 변화가 굉장히 미미해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애초에 대나무 칫솔을 사서 쓰고, 폐페트병으로 만든 파타고니아 티셔츠를 입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리라 기대한 적은 없다. 그것만으로 쉽게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면 애초에 다가올 인류의 종말을 기후 ‘위기’ 혹은 기후 ‘재앙’이라는 말로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바뀐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아주 오래전 누군가 당신에게 툭 던진 말 중 하나가 오래도록 상처로 남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지어지며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런 크고 작은 것들이 모여 당신 인생을 어떠한 방향으로 조금씩 바꿨을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만들어졌다. 별것 아닌 줄 알았던 시도와, 작은 변화를 만드는 용기가 모여 지금의 세상이 됐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당신이 이 글을 보는 지금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세상은 오히려 지금까지 한 번도 같은 모습인 적이 없다. 그러니 혹시 아는가. 옷을 한 벌 덜 사보겠다는 당신의 다짐이, 세상을 얼마나 크게 바꾸어 놓을지.

실패할 때도 있을 것이다. 다 의미 없는 일이라고 마음을 쿡 찌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 집으로 돌아와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내일은 이렇게 해볼까?” 칠흑 같은 비관을 깨뜨리는 한 줄기 가는 빛을 따라 낙관의 발걸음을 떼보는 것이다.

끝내 죽음이라는 운명이 정해져 있음에도 오늘 하루 친구들과 매운 떡볶이를 먹는 게 의미 있듯, 다가오는 기후 위기의 예고된 종말 속에서도 오늘 하루는 제로웨이스트를 다짐하는 당신의 실천은 여전히 의미 있다. 그러므로 ‘이런 거 한다고, 세상이 바뀔까요?’라며 고민을 털어놓는 당신은 어쩌면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평소 환경보호를 열렬히 외치지만, 아침에 일어나 빵을 토스터에 굽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성실히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탄소와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그런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어서 내 삶에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하나씩 떼어내기로 했다. 그렇게 가장 먼저 이별하게 된 것이 쇼핑이었다.

숨이 붙어 있는 크고 작은 생명을 사랑한다. 새벽에 일어나 할머니 댁 뒤뜰을 열면 봉숭아잎에 그렁그렁 매달린 이슬을 바라보는 게 좋다. 마당에서는 잔뜩 신이 난 우리 강아지 방울이가 앞발을 콩콩 모랫바닥에 찍어내는 발자국을 바라보는 게 행복하다. 바다에 뛰어들면 궁금하다는 듯 물안경 가까이로 머리를 들이대고 보는 해양 동물과 눈을 마주칠 때 웃음이 새어 나온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은 항상 그런 곳에 있었다. 매끈하게 닦인 대리석 바닥의 백화점이나 편집숍이 아니라. 그 사실을 너무나도 늦게 깨달았다.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작고도 큰 결심 안에서 나는 자주 실수하지만 끝내 성공해내며 나만의 멋을 찾아가고 있다. 네모반듯한 공허한 새 쇼핑백을 어깨에 두르는 것보다 소중한 사연이 차곡차곡 담긴 헌 옷을 서로 교환해 입는 게 더 좋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두고 구멍 난 양말을 꿰매어 신는 게 더 좋다. 엄마의 젊은 날이 녹아 있는 옷장 문을 열고 추억이 깃든 옷을 꺼내 내 일상에 살포시 포개는 게 더 좋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불필요하게 착취하거나 낭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게는 멋이자 패션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불필요하게 착취하거나
낭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게는 멋이자 패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