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만남
20대 여성 김유솔 이장이 쓰는
‘완도에 살어리랏다’
글. 홍보실
글. 홍보실
2024년 5월 마지막 날 오후 KTR 미녀 4인방, 전기제품인증실 신미옥 수석연구원, 인증운영실 이선화 책임연구원, 충북센터 임형숙 책임연구원, 광주전남센터 선현이 수석연구원이 우리나라 최연소 김유솔 이장을 만났다.
‘젊은 여성 이장’ 사회적 통념을 깨는 혁신이다. 김유솔 이장은 서울에서의 바쁜 생활을 뒤로하고 고향인 완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용암마을 이장으로서 지역 사회의 혁신과 청년 정착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김유솔 이장이 전하는 완도에 대한 애정과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혁신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어보았다.
전라남도 완도군 용암리 주민 평균 연령은 68세다. 고령화를 걱정하는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를 것이 없는 마을이다. 조용한 어촌 마을이 전국적으로 이목을 끈 것은 전국 최연소 이장, 그것도 결혼 안 한 여성이 이장에 취임한 이후부터다. 신미옥 수석연구원은 김유솔 이장에게 상경과 완도로의 귀향 이유를 물었다. 김유솔 이장의 답에서 지역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저는 사실 고향에 대한 애착이 없었고, 고향을 싫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디자이너의 꿈을 펼치기에 완도는 너무 작았어요. 완도에는 입시 미술학원이 하나도 없고, 친구들의 80%가 공무원 아니면 양식업을 하는 친구들이었어요. 다양한 직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완도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직장 생활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각박한 생활에 지치기 시작했죠. 서울 생활이 힘들수록 한적한 완도 바다가 너무 그리웠어요. 재충전을 위해 완도에 내려왔는데 완도에서의 삶이 훨씬 더 여유롭고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신미옥 수석연구원이 질문을 이어갔다. “서울 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완전히 다른 생활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김유솔 이장은 “많은 분이 저와 대화할 때 빠뜨리지 않는 질문이에요. 저를 응원하는 분들이 혹여나 제가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서울과 완도 생활의 가장 다른 부분은 ‘여유’라고 생각해요. 서울에서는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일이 잦았는데, 완도에 와서 사진관을 하면서 여유가 생겼어요. 서울에서보다 수입은 적지만 지출도 적어서 경제적으로도 별 차이가 없어요. 완도에서는 꽉 끼지 않은 하루가 여유롭게 지나가는 것 같아요.”
“재충전을 위해 돌아온 완도,
완도에서는 꽉 끼지 않은 하루가
여유롭게 지나가는 것 같아요.”
김유솔 이장의 완도 생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선화 책임연구원은 김유솔 이장을 혁신의 아이콘으로 만든 마을 이장 취임 이야기를 꺼냈다. “2022년 1월 대한민국 최연소 여자 이장에 취임하셨는데 이장이 되겠다는 마음은 어떻게 갖게 되었나요?”라는 물음에 김유솔 이장은 전임 이장님의 제안 이야기로 답변을 이어갔다. “제가 완도에 내려와서 또래 친구들과 다양한 일을 벌였어요. 프리마켓도 열고,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했어요. 젊은 친구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이장님께 좋게 보였는지 제게 이장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제 적성에도 맞는 것 같고, 어르신들과 소통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그때까지도 ‘최연소 여성 이장’이라고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어요.”
김유솔 이장은 완도 귀향 3년 만에 용암마을 이장이 되었다. 처음에 가족과 친구들은 이장이 되었다고 했을 때 농담으로 치부했다. 이제는 용암마을 이장 3년 차가 되니 김유솔 이장의 능력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장을 맡은 첫해는 좌충우돌이었다. 폐가 처리, 가로등 설치에서부터 스마트폰이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에게 문자 보내는 법을 가르쳐드리는 것까지 마을의 대소사를 해결해야 했다.
선현이 수석연구원은 젊은 여성이 마을 이장에 나서겠다고 했을 때 주민분들의 반응도 궁금하다고 했다. 연세 지긋한 분들에게 애송이처럼 보였을 것이니 선 수석연구원의 의문도 이해가 갔다. 김유솔 이장은 선현이 수석연구원의 질문에 주민총회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장 선출을 위해서는 주민총회를 하거든요. 낯선 청년이 이장하겠다고 하니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는데 어르신 한 분이 각오 한마디 해보라고 하셨어요. 외할아버지가 용암마을 토박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누구 손녀인지 물어보시기도 하셨고, 잘 해보라고 응원해주시기도 하셨어요. 외할아버지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저는 혁신이 거창한 슬로건보다
작은 실천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작은 실천이 완도를 바꿔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합니다.
임형숙 책임연구원은 김유솔 이장의 본업이 사진관 사장이라는 것이 흥미롭다며, 사진관 운영이 잘 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김유솔 이장은 완도의 생활 인프라가 많이 부족한데 수요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인프라 상황이 열악해 수요의 외부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완도에는 제대로 된 사진관이 없어요. 학기 초가 되면 완도 학생들이 광주에 가서 사진을 찍어요. 완도에 사진관이 하나 있긴 한데 할아버지가 운영하셔서 청소년들의 수요를 흡수하지 못해요. 아이들 마음에 안드는 것이죠. 그래서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제가 사진관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스타일링도 해주고 포토샵으로 요즘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수정까지 해주니 만족도가 아주 높아요.” 김유솔 이장은 사진관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매일 문을 열었으나 이장이 되고 난 이후로는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이장 일과 사진관 운영을 함께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김유솔 이장이 요즘 관심이 있는 분야는 청년이 살기 좋은 완도 만들기 사업이다. 광주에서 생활하는 선현이 수석연구원은 지방 도시의 청년 유출이 심각하다며 김유솔 이장의 지역 살리기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김유솔 이장은 “청년들이 완도에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사진관을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입니다. 작년부터 시작한 ‘완도 한 달 살기’ 사업도 같은 목적이에요. 한 달 동안 살아보고 살만하면 정착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완도군에서도 저희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청년이 살만한 완도를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도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혁신이 거창한 슬로건보다 작은 실천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작은 실천이 완도를 바꿔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합니다.” 젊은 이장 김유솔 씨는 KTR 4명 구성원에게 작은 울림과 큰 감동을 주었다. 자신들보다 한참 어린 김유솔 이장이 완도 혁신을 위해 뛰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과천에서, 청주에서 그리고 광주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김유솔 이장을 만나러 완도까지 찾아온 것이 힘들게 여겨지지 않았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