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위한 현실적 선택
글. 전승민 과학기술전문저술가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면서 탄소 배출이 적은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전기, 수소, 메탄올, 암모니아 등 다양한 친환경 연료가 검토되고 있다. 연구개발을 계속한다면 언젠가 이런 연료의 효율이 현재의 휘발유, 경유 차량을 넘어설지도 모른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새로운 연료를 이용한다는 것은, 자동차나 선박, 항공기 등의 운송수단도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거리가 있다. 자동차는 한 번 만들면 보통 10여 년, 선박이나 항공기의 경우 수십 년 이상 운영되므로 일거에 교체하기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기존 운송수단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으면서도 환경친화적인 인공 연료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탄소중립’ 개념부터 이해하자
보통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연료는 땅속에서 채굴해 온 석유나 천연가스 등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화석연료’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런 연료에 불을 붙여 동력을 얻다 보니, 연료 속에 들어 있던 탄소(C)가 그대로 공기 중으로 배출되며 이산화탄소로 변한다.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된다고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연료에는 ‘탄소중립’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적용된다. ‘장작’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장작을 불태워 에너지를 얻어도 이산화탄소는 배출된다. 하지만 장작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숲을 가꾸고 조성했다면 어떨까. 숲은 성장해 가면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했을 것이다. 지구 대기 환경에서 보면 결국 이산화탄소의 총량은 같게 된다. 이렇게 탄소의 총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결국 지구 환경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 연료를 ‘탄소중립 에너지’라고 부른다.
이 개념 아래 자동차 및 선박, 항공기 분야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연료가 ‘이퓨얼(E-Fuel)’이다. 이퓨얼은 전기기반연료(Electricity-based Fuel)의 약자다. 대기 중 포집한 이산화탄소와 물을 전기 분해해서 얻은 수소로 제조한 합성연료다. 쉽게 말해 화학적으로 만든 ‘인공석유’를 의미한다. 기존의 석유와 사실상 같은 물질이라 당장 내연기관 차량이나 선박, 항공기 등에 그대로 넣어서 사용할 수 있다. 유통 과정에서도 기존의 석유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이 연료를 사용하면 현재와 똑같이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다만 이 연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쓰게 되므로, 넓은 시각에선 지구 전체의 탄소가스 농도가 증가하지 않는 효과를 가져온다. 더구나 완전히 성분이 조정된 연료를 만들 수 있으므로, 현재 유통되고 있는 휘발유나 경유, 항공유 등과 비교해 품질을 압도적으로 좋게 만들 수 있다. 그 뜻은 연소 효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기존에 비해 미세먼지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런데 공장에서 연료를 만들었다면, 그 자체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이 아닐까? 어떻게 하길래 연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이퓨얼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가장 중요한 재료가 바로 ‘이산화탄소’다. 전기를 이용해 물을 분해해 수소를 얻은 다음, 이를 이산화탄소와 화학반응 시켜 합성 탄화수소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얻은 합성 탄화수소를 정제 등의 과정으로 성분을 조정하면 휘발유나 경유, 항공유 등 다양한 연료로 만들 수 있다. 에너지를 투입해 연료를 생산한다고 해서 ‘PtL(Power-to-Liquid)’ 공정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재료가 되는 이산화탄소와 수소는 어디서 얻어올 수 있을까. 우선 이산화탄소부터 살펴보자.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하는데, 크게 두 종류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공장이나 발전소 등 산업현장에서 생겨나는 이산화탄소를 갈무리해 오는 방법이다. 어차피 지구 대기 중으로 흩어져 나갔어야 할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친환경 연료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산업시설에서 이산화탄소를 갈무리해 활용하는 것을 흔히 ‘CCU(Carbon Capture & Utilization)’라고 부른다. CCU보다 효율은 떨어지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지구 대기 중에 섞여 있는 이산화탄소를 그대로 흡수해내는 방법도 존재한다. 흔히 DAC(Direct Air Capture)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DAC 관련 시설을 운영하는 캐나다 카본 엔지니어링에 따르면 DAC 장치 한 대가 연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은 10만 t 정도이다. 이 정도 분량이면 약 2,460L의 이퓨얼을 생산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수소다. 수소를 만드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만드는 방법에 따라 이름이 바뀐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소는 화석연료를 써서 만든 ‘그레이 수소’다.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친환경 에너지로 구분하기 어렵다. 이렇게 수소를 생산하면 중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수소를 이용해 이퓨얼을 만들어 볼 수는 있는데, 그렇게 하면 이퓨얼이 가진 ‘탄소중립 에너지’라는 장점이 무색해진다. 따라서 이퓨얼을 만들 때는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만들고, 그 전기로 다시 물을 분해해 얻어내는 ‘그린 수소’를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가격이다. 그레이 수소를 만드는 방법 대표적인 것이 ‘천연가스’를 개질하는 것인데, 이 경우 가격이 1㎏당 1.50달러 정도다. 그런데 그린 수소는 무려 5달러에 달한다.(2021년 기준, International Energy Agency). 다만 그린 수소 가격도 꾸준히 낮아지고 있으므로 장기적으로는 이 차이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세계는 이미 이퓨얼 개발 경쟁 중
이처럼 장점이 적지 않다 보니 이퓨얼을 개발하고 도입하려는 곳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사실 이퓨얼은 발명된 지 100년이 넘었다. 그간 저렴한 채굴 석유에 밀려 상용화될 기회가 없었는데, 석유 시세가 지속해서 높아지고 있고, 새로운 공정을 통해 이퓨얼 생산 가격을 낮출 여지도 생겼다.
먼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자동차 업계가 이퓨얼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럽 자동차 업체들이 적극적이다. 전통적으로 내연기관 자동차 성능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회사들이기에 이퓨얼이 정착될 경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포르쉐는 수년 전부터 2,400만 달러를 투자해 에너지기업 지멘스와 함께 칠레에 이퓨얼 생산공장을 세우고 있다. 2026년부터 연 5억 L 규모의 이퓨얼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 밖에 도요타와 닛산, 혼다도 탄소중립 엔진 개발을 위해 이퓨얼 공동 연구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독일 종합 자동차 그룹 폴크스바겐의 올리버 블루메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은 자사의 미래 전략에 대해 ‘더블-e’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여기서 더블e란 e-모빌리티와 e-퓨얼을 의미한다. 전기차 기술을 빠른 속도로 발전시키는 한편, 이퓨얼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밖에도 아우디도 2017년부터 이퓨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은 이미 이퓨얼 생산을 시작했다. 포르쉐는 지멘스 에너지(Siemens Energy)와 컨소시엄을 맺고 하루-오니(Haru-Oni)라는 이퓨얼 생산 계획을 출범시켰다. 칠레 파타고니아에서 마갈라네스 지역의 강한 풍력 에너지와 이산화탄소를 사용해 합성 연료를 생산한다. 2022년 12월 이미 첫 연료 공급을 시작했다. 앞으로 연간 13만 리터의 이퓨얼을 생산할 예정이다. 앞으로 연간 5억 5,000만 리터까지 생산을 늘려 나갈 계획이다.
국내 자동차 회사나 정유사에서도 이런 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대차·SK이노베이션 진영의 노력이 두드러진다. 현대차는 2019년 기초선행연구소(IFAT) 설립 후 이퓨얼 제조기술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기술 동향을 체크해 오다, 2022년부터 SK이노베이션과 적극적으로 개발에 나섰다. 현대오일뱅크도 덴마크 할도톱소사와 친환경 기술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해 이퓨얼 공동 개발에 나선 바 있다.
항공시장도 이퓨얼 도입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이퓨얼을 대규모로 생산해 항공사에 공급하려는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노르웨이가 대표적인데, 프로젝트명 ‘노르스크 이퓨얼(Norsk e-fuel)’이 이미 출범했다. 선파이어(Sunfire), 클라임웍스(Climeworks), 폴 뷔르트(Paul Wurth), 노르스크 핀드(Norsk Vind), 등의 유럽의 대표적 기업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목표는 2030년까지 유럽에 위치한 세 개의 공장에서 2억 5,000만 리터의 이퓨얼을 생산하는 것. 이들은 ‘지속 가능한 항공 연료(Sustainable Aviation Fuel, SAF)’ 생산을 위해 세계 최초의 통합 이퓨얼 공장을 노르웨이의 ‘모스요엔’ 지역에 건설하기로 하고, 노르웨이 항공사인 노르위지안(Norwegian)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생산은 2026년부터 시작되며, 이렇게 얻은 연료는 파트너쉽을 맺은 노르위지안 사에서 대부분 사용하게 된다. 덴마크도 잰걸음을 하고 있다. 북유럽 기업 아카디이퓨얼(Arcadia efuel)은 덴마크 보딩보르그에서 이퓨얼 생산 시설 건설을 시작했으며, 2026년 완공 예정이다. 2030년까지 연간 약 1억 리터의 SAF를 생산하고 코펜하겐 공항 등을 통해 항공유로 공급할 계획이다.
비싼 가격이 걸림돌, 기술개발+제도 개선 통해 극복 필요
문제는 가격이다. 이산화탄소를 얻어오고, 비싼 값에 수소까지 생산해야 하니 이퓨얼 제조 단가는 비싸질 수밖에 없다. 포르셰가 2023년 12월부터 에너지 기업 HIF와 함께 칠레에서 생산 중인 이퓨얼은 리터(L)당 50유로(약 7만 4,000원)다. 일반 휘발유 도매가(0.5유로)의 100배 수준이다. 그러나 이 역시 시간이 흐르면 기술이 발전하고 규모의 경제가 완성되며 가격이 한층 더 낮아질 거라는 기대가 많다.
친환경 운송 수단을 연구하는 비영리 단체 ICCT는 2030년에는 이퓨얼 가격이 L당 3~4유로까지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휘발유가와 비교하면 가격이 쌀 때와 비교하면 3배, 비쌀 때와 비하면 2배에 달한다. 한국화학연구원도 이퓨얼의 생산단가를 배럴(159리터)당 200달러(185유로) 수준으로 안정화할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이런 점을 종합할 때, 이퓨얼 가격은 지속해서 낮아질 것으로 보이며, 수년 내 가까운 미래에 현재 휘발유가의 2배 정도 선에서 안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퓨얼의 가격이 비싼 것은, 원료가 되는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얻는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소 생산공정을 개선하면 상대적으로 가격은 낮아진다. 2050년 이후면 친환경 수소생산 공정이 큰 폭으로 개선되므로 가격 역시 지속해서 안정돼 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막연히 2050년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을 중심으로 기존 석유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퓨얼 사용을 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이 지속해서 늘어나면 대량생산을 통해 단가를 낮출 여지가 생기며, 그 과정에서 효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기술개발 역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연합은 우선 2030년까지 전체 석유 소비량 중 1.2%를 이퓨얼로 대체해 나갈 계획이다.
석유 계열 연료는 작지 않은 환경오염을 불러온다. 탄화수소가 주성분으로, 황, 알루미늄, 실리콘 등의 이물질을 함유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많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다. 그렇다고 수소, 핵융합 등 진정한 친환경 에너지가 사회에 자리 잡기를 막연히 기다리기엔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이퓨얼 계열의 친환경 연료는 현실적으로 더 깨끗한 세상으로 다가서는 현실적인 대안이 돼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