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모으는 행위
글. 안주연 정신과 전문의
“이번주 ○ ○ 프로그램 보셨어요?
커플이 싸울 때 정말 도파민 터졌죠?”
“와 고자극… 도파민 파티네요!”

언제부턴가 우리는 세상의 모든 흥미와 자극을 ‘도파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쇼츠를 끊임없이 넘겨보고, 맵거나 단 음식을 몰아 먹으며 강렬한 자극을 추구하게 된다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반복적 자극 추구에 이름도 붙었습니다. 신조어 ‘도파밍’은 새로운 것을 접하거나 보상이 기대될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과 게임에서 농작물을 수확하듯 아이템을 모으는 행위인 파밍(farming)이 합쳐진 말입니다. 쾌락이 기대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하고 공유하는 행위를 가리키지요.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즐거움과 자극을 모으는 데 집착하게 된 것일까요?
정신건강 전문가로서 떠올려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현대인은 경쟁이 심하고 할 일이 많은 일상을 쫓기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높은 스트레스에 비해 기대되는 보상은 충분하지 않으며, 즐거움을 누릴 경제적, 시간적, 심리적 여유도 부족해요. 그러니 짧은 시간에 쾌락과 위로를 줄 말초적 자극에 매달리게 됩니다.
두 번째, 외로움과 고립이 중독과 탐닉을 부추깁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중독포럼이 성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 두기 이후 주 4회 이상 음주를 하던 사람들의 음주 횟수가 더 늘었고, 스마트폰 이용·온라인 게임·도박 등의 이용 횟수도 증가했다고 합니다. 친밀감을 느끼면 뇌에서 옥시토신이 분비되는데요, 옥시토신은 보상과 관련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기에 우리는 애착행동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낍니다. 여러 이유로 애착이 손상되면 옥시토신 감소와 이에 따른 도파민 분비 감소가 일어나, 누군가는 부족한 도파민을 채우기 위해 음주, 폭식, 게임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IT기술 발달에 이윤 극대화를 위한 기업들의 알고리즘 전술이 더해지면서 우리는 버튼만 누르면 음식을 배달시키고, 쇼핑을 하고, 도박을 하고, 영상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제트 만능 팔 같은 스마트폰을 쥔 상태에서 만족지연능력, 자기통제능력을 기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떡하지 내 집중력!’, ‘도파민 중독을 끊어내기 위해 도파민 단식을 해야겠어!’라며 걱정하시기 전에, 문제의 ‘도파민’에 대해 좀 더 알아볼까요? 도파민은 우리 뇌의 신경조절물질로, 여러 부분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뇌에 쾌감, 즐거움과 관련된 신호를 전달하는 것인데, 이는 우리 뇌의 보상체계와 관련이 있어요. 보상체계는 동물에게서부터 발견되는데, 자신과 종의 생존기회를 높이는 행동을 유도하며, 그 결정을 즉각적으로 내리도록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매력적인 데이트 상대를 보는 등의 행동을 하면 번성을 기대하면서 도파민 ‘욕망회로’가 반응하여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어떤 일들을 계획하여 이루어가는 전전두엽을 중심으로 한 고등실행기능에도 도파민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회로는 건강, 학습, 성공과 같은 장기적 목표를 위해 본능적 행동의 속도를 늦추고 조절하기에 ‘도파민 통제회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전전두엽의 도파민은 상충하는 욕망과 현실, 과거 경험과 새로운 정보를 통합하여 목적지향적 행동을 지속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ADHD와 같이 도파민 시스템 조절이 어려운 질환에서는 적절한 자극을 선택, 통제,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아 중독에 더 취약해지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도파민을 자극적이고 찰나적인 것의 대명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요. 오히려 짧게든 길게든 미래에 대한 기대를 자극해 우리를 욕망하고 움직이게 하는 물질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 방향과 속도가 다를 뿐이지요. 문제는 술, 약물, 도박 및 짧고 강렬한 자극의 쇼츠와 같은 인위적인 자극은 생존과 관련된 자연스러운 자극보다 몇배나 강렬하며 더 오래 지속되는 보상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일상의 자연스런 자극에서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쾌락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이를 체감한 분들이 강렬한 인위적 자극에 대한 탐닉을 ‘도파민 중독’이라고 부르며 경계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즉각적이고 말초적인 자극을 조절하는 것은 우리의 건강과 평화를 위해 중요한 일입니다. 탐닉적 식사나 인터넷 자극 등을 제한하는 ‘도파민 디톡스’가 정말 도파민의 농도를 낮추는 것도 아니고, 도파민이 무조건 낮추어야 할 물질도 아니지만, 인위적 자극에 쉽게 접근했던 환경을 조절한다는 면에서 시도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자극을 절제하는 새로운 습관이 생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에, 애착 대상으로부터 충분히 수용받고 격려받으며 절제의 날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남들만큼 성공해야 하고, 항상 지금보다 나아져야 하고, 현실에 안주하면 도태된다는 압박감이, 우리를 ‘도파밍’에 빠지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만약 당장에 지지해줄 애착대상이 없다면, 상담 또는 치료기관을 찾아야 하고, 그도 어렵다면 스스로라도 자신을 충분히 지지하고 수용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도파민을 적절하게 조절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금, 여기서, 함께’를 제안하고 싶어요.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다른 생명체와 직접 만나고 접촉하고 소통하는 것이,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하며 폭주하는 마음을 다독이는 좋은 방법 아닐까요. 미래를 계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에 다른 이들과 함께 머물며 지금의 느낌을 즐기는 것 또한 삶의 중요한 부분이며 실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자극적 탐닉에 대한 해독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가진 것의 소중함을 느끼고 삶의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며, 더 나다운 미래를 향해 내딛는 여러분의 균형 잡힌 발걸음을 응원합니다.